끝까지 봐야지 ‘어쩔수가없다.‘(노스포)
문화생활을 정말 오랜만에 했습니다. 올해가 아직 한참 남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제가 본 영화 중 최고는 바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입니다.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블랙 코미디
"어쩔수가없다"는 아무런 정보 없이 극장으로 홀려들어가서 본 영화입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이 나온다는 것도 모르고 극장으로 갔고 어쩔수가없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정말 구린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제목을 보면서 기대치는 지하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기대없이 극장을 갔을 때 명작을 마주칠 확률이 높아집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정원에서 펼쳐지는 가족 잔치는 우리나라라고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세대간의 차이와 가족을 이끌어가는 가장의 책임감이 들어나면서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책임감을 정말 불편하게 표현합니다.
어쩔수가 없긴 뭘 어쩔 수 없어!
제가 이렇게 박찬욱의 개그코드와 잘 맞는 사람인지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기는 뭘 어쩔 수가 없어!"
영화에 모든 대안이 나오지만 그 대안을 어쩔 수가 없다는 모호한 핑계를 대며 부셔나갑니다. 거장이 만든 영화답게 엄청난 명성의 배우들이 나오지만 이병헌에 의해 척척 쓰러지죠. 뭐 정도 말씀드리는 건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병헌도 우리와 같은 관객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프로가 되어갑니다.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러듯 처음보다는 두번째가, 두번째 보다는 세번째를 훨씬 자연스럽게 잘하는 것처럼 이병헌도 성장해 나갑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거지?
이 영화를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봐야합니다. 관객은 '도대체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하는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일반적인 영화는 감독이 만들어준 매력적인 이야기를 도구로 꽃길을 따라 산책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하는거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감독이 만들어논 길을 억지로 들어가야합니다. 감독 역시 관객을 억지로 이야기로 끌고 들어가는 법을 압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수는 두지 않죠. 완급조절이 뛰어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지 못할 영화
제가 이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처음 내뱉은 문장은 "이 영화는 관객의 사랑을 받지 못할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런 또라이 같은 영화를 저는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런영화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 관객이 이런 영화를 받아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불편하기 때문이죠. 뿌려둔 떡밥을 모두 회수하고 튼튼하게 끌고가는 서사글 가지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의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듭니다.
계속 뭔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생각할 거리를 분명하게 놓았지만 워낙 많이 뿌려놓아서 해석하기에 머리가 아픕니다. 해석하려들지 않아도 됩니다. 이 영화는 되게 명쾌하게 답을 내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수 있을 장치를 많이 넣어놓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려고 하지? 이 생각으로 저는 혼자 실소를 뽑아내었습니다.
정말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할 영화예요. 하지만 모두가 좋아할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없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
"제지회사? 그게 그렇게 돈을 많이 버나?"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는 제지라고는 한솔제지 정도? 그럼에도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인물이 유토피아 처럼 원하는 회사는 제지회사입니다. 태양같은 존재죠. 어떤 이유도 필요없습니다. 제지회사를 가는 것이 숭고한 삶의 의미인 것이죠. 근데 사실 현실에서 제조회사는 사양산업이 분명합니다.
인간은 어떨까요? 회사에서 사람은 기계에 대체되고 이제는 의사결정도 AI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우리와 제지회사 모두 사라져가고 있죠. 자리는 점점 작아지고 그 희소한 자원을 누군가는 쟁취해야합니다.
근데 대안은 없을까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대안을 찾으면 쉬울텐데, 우리가 스스로 시야를 좁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시간은 유한하고 자원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찝찝하고 보고 나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주는 작품이야말로 명작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