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과 군도, 감독의 애정과 욕심
감독은 항상 많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추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 것이고 그것에 맞게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고 강조하고 싶은 것을 두각시키고 그것에 따라 주변에 다른 것들은 축소시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때로는 현상의 왜곡으로 그칠 수도, 그것을 뛰어넘어 뛰어난 예술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감독은 주어진 소재를 잘 요리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잘하면 명품이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최상급 횡성한우로 된장찌개를 끓일 수도 있다.
올해 여름에 개봉한 두 영화 명량과 군도는 요리사의 능력에서 차이를 보였다. 소재만 보자면 성웅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그린 명량, 19세기 민중들의 난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철종시절을 소재로 삼은 군도는 전쟁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영웅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한쪽은 민중들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감독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고정된 시각에서 탈피해서 다른 방향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
- 명량
성웅에 대한 존경, 민중에 대한 사랑에서 나타난 감정의 절제
한국영화에 대한 흥행 기록을 몽땅 갈아치우면서 쾌속질주를 하고 있다. 불과 10일만에 누적관객수 800만을 돌파하면서 이제는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렇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게… 왜?’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주변에서 듣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명량을 보러 극장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든다. 어찌보면 명량의 기록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이순신이라는 한 영웅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을 향한 국민적인 사랑은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민족의 영웅, 이순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뇌와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들인 공은 나중에 해상 전투씬에서 통쾌하게 드러난다. 영화의 초반부는 후반부 전투씬을 위한 응축과정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영웅과 그들과 함께하는 많은 조력자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낸다.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초반에 갈고 닦인 감정의 여백들이 후반부에 폭발적으로 채워지는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산이 좋아 산을 가는 사람들은 조금만 있으면 정상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막걸리 한잔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명량은 그렇게 봐야 하는 영화다.
마치 습식 사우나에 앉아서 허벅지에 떨어지는 땀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참으면 시원한 냉탕에서 수영을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초반부를 견뎌내야 한다. 이처럼 이순신에 대한 애정은 오락영화답지 않은 지나친 감정의 절제를 만들었다.
또 다른 면에서 보았을 때, 이순신의 영웅적 업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주변부에 대한 소소한 묘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주변인물로 남았던 일반 병사와 그 가족들의 역할, 소시민적인 한을 나타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가장 백미는 포탄에 부서진 배를 고치고 있는 선원이 아닐까 싶다. 위급하고 절박한 순간에서도 감독의 세심한 눈길은 민중을 벗어나지 않았다. 현대판 ‘적벽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 사실적인 묘사와 빠른 전개로 사랑을 받았던 ‘활’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감독이 이순신을 사랑한 대가다.
- 군도
감독의 욕심 폭발, '산으로 가는 특급 선박'
너무 많은 사공들이 나온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공,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관객의 이해를 돕고 싶은 사공, B급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공, 서부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공, 그러면서 감동도 주고 웃음도 주고 싶은 사공, 다 섞으면? 영화는 산으로 간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한가지 주제를 놓고 너무 많은 요리를 만들어 내려고 했다. 재료를 난도질해서 이도 저도 아닌 죽이 되어버렸다. 한가지를 하고 싶으면 한가지를 했어야 했다. 실험적인 작품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것도 안 되는게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 실험 한 번 하자고 연구실을 불태워 버렸다.
한국형 서부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소재는 탁월했다. 조선 역사상 그만한 무정부 상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과도기 상태였고 외세의 침입만 없었다면 민중들의 반란이 성공할 수도 있던 시대였다. 문제는 감독의 욕심이다. 지나치게 좋은 물고기를 잡은 나머지 회도 먹고 싶고, 찜도 먹고 싶고, 탕도 먹고 싶어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다해버리자!’한 느낌이다.
한국판 B급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면 확실하게 했어야 했다. 서부영화를 만들려면 확실하게 파고 들어갔어야 했다. 그냥 그런 장르영화의 장면의 연속, 황당한 크로즈업이 아닌 개연성있는 줄거리가 일단 밑받침이 되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장면 몇 개로 영화가 팔렸던 적이 없다는 점을 명심했어야 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터져 나오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겠지만 그것도 그냥 저냥 넘어갔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 조차 짧다고 여겨졌는지 나래이션으로 대부분의 스토리를 띄엄띄엄 뛰어넘었다. 그 마당에 관객들은 왜 도치가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적떼들은 왜 탐관오리의 손자를 대신 키워주고 있는지, 얼음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조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죽이고자 했던 아이를 죽을 때 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알아낼 순 있지만 굳이 왜 내가 그걸 연결해야 하는가 피곤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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