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기 시작하다
출퇴근 하는 시간을 다 합치면 거의 3시간은 된다. 많은 사람들 틈에 껴서 부대껴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패드를 들고다니면서 신문을 볼까 했지만 미끄러운 아이패드의 바디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어깨조차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아이패드를 들고 있는 다는 것, 그리고 책보다 밝은 화면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출퇴근 길에 패드를 가지고 다니지 못했다.
개인적인 공간이 전혀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어떤 날은 미드를 보기도 했고, 사람이 없는 늦은 퇴근 길에는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아침에 아이폰으로 영자 기사를 보며 출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겨운 날에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찾아보면 할 것은 무궁무진 하지만 각각의 단점이 존재한다. 미드는 지하철의 어느 구간에 가면 상습적으로 끊기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한편을 다 보기가 힘들다. 아침에 본 내용이 잔상으로 남아있고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너무 궁금해 하루종일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는 단점이 있다.
영어 공부는 나름 대로 생산적이었다. 모르는 시사 단어도 많이 익히고, 한달 가량했을 때는 독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익숙한 단어들이 있을 때나 흥미로운 기사가 있을 때는 술술 읽혔으며, 그렇지 않은 때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다. 한창 IS문제가 시끄러웠을 때라 중동의 골칫거리에 대해서 우리나라 언론보다 빨리 접한다는 지적 우월감에서 오는 쾌감도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는 가뭄에 콩나듯 나온다는 것이 문제였고, 무엇보다 내 눈에게 너무 미안했다. 우리나라 글도 읽기 힘든 스마트 폰을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눈알 빠지게 꼬부랑 문자를 보고 있는다는 것은 눈에 대한 범죄행위였다. 뭔가 얻는 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만큼 눈에게 미안했다.
게임은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로 시간이 아깝다. 머리를 쓰는 게임을 하면 좀 나아지려나...
결국 요즘에 시작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시'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도 있었고 지식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붐비는 지하철에서까지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출퇴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않다. 붐비는 와중에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것도 민폐이거니와 책을 읽을 만한 공간도 협소하다. 꽉 끼는 지하철에서 책을 쉽게 읽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기 전에 책을 미리 빼 놓아야 하며 책을 읽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앉거나,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 머리위로 책을 들고 읽는 것이 제일이다.
어쨋든 이렇게 '출퇴근 시간에 뭐할까?'를 생각하는 긴 과정을 거쳐 오늘 부터 다시 삼국지를 읽기 시작했다. 끝까지 읽어 보고 싶은 책이지만 아직 까지도 끝을 보지 못했다. 학창시절에는 삼국지 장수들을 줄줄이 나열하는 친구들을 보면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나이는 아니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읽기 시작했다. 10년에 한번은 읽어야 된다는 삼국지를 요새들어 다시 읽으면서 이번 만큼은 꼭 다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양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고전이라면 삼국지, 수호지, 촉한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아직 하나도 못 읽었지만 하나 하나 차근차근 읽어가야겠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로마신화도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