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을 마비시키는 뮤지컬 "시카고"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소화제가 필요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접할 때마다 흥미롭다. 음악과 연극 그리고 춤과 노래,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보기는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나에게 그렇게 친숙하지는 않고 어떻게 보아야하는지 감도 잘 안온다. 처음 본 뮤지컬은 군대에서 본 갬블러였다. 허준호씨가 주연으로 활약했고 골든키 어쩌고 하면서 진행했던 극이었는데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전통에 얽매이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시도하고 예술에 집착할 필요도 없이 가볍고 경쾌하게 볼 수있는 분위기는 정말 새로웠다. 티켓 가격을 알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제대를 하고 나서 본 뮤지컬은 총 4편이다. 박해미씨가 그리자벨라 역을 맡았던 캣츠, 조승우가 지킬박사로 나왔던 지킬앤하이드, 뉴욕 신혼여행에서 보았던 위키드, 그리고 이번에 본 시카고다. 그동안 뮤지컬을 볼 때마다 신경써서 주목했던 것은 가사 전달력이다. 그런데 시카고를 보면서 느낀 것은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다 잘 들리는 것은 또 아니라는 것이었다. 뮤지컬 속에는 시선과 청각을 빼앗어갈 수 있는 장치들이 너무 많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가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넉 놓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가는 줄거리를 놓칠 수도 있다.(다행이 아직까지 그런적은 없지만)
그만큼 무대 장치나 음향, 조명 등이 매력적이고 배우들의 사소한 움직임이나 코러스 등 놓치고 싶지 않은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기에 동시에 소화하기 벅찼다. 때문에 뮤지컬 마니아는 비싼 티켓 값을 기꺼이 내면서 한개의 뮤지컬을 두 번, 세 번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두엽 마비
이번에 내가 본 시카고는 최정원씨와 아이비가 벨마와 록시를 맡았다. 극 초반 부터 반라의 남녀가 나와 매력적인 재즈댄스를 펼치는데 그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가 없었다. 현란한 연주와 함께 시작된 춤사위는 충분히 선정적이었고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볼 거리가 많았다. 그야말로 전두엽이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노래도 듣고 배우도 보고 스토리도 보고 해야하는데 그동안 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한 경험에서 온 전두엽 마비였다. 극 초반에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쓰잘데기 없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느끼게된 감정이었다.
조금 지나고 감정을 추스리고 뮤지컬에 점차 다시 적응해 해나갈 때 쯤에는 그런 증상이 사라졌다. 표에는 분명 중학생 이상 관람가라고 써있었는데 이걸 중학생(괄호안에 고등학생 이상이 좋다고 씌여져 있긴하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 만약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건 분명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되야한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이내 우리나라도 이런 무대에 좀 관대해 져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익숙해졌다. 충격은 순간이지만 감동은 내눈 앞에서 2시간이 넘게 지속되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명성에 목말라 있는 관심병 종자 록시가 지멋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사형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유능한(?) 변호사 덕에 유명해졌고 그것을 순전히 관심이 필요한 록시의 입장에서 해결해나가고 결국에 벨라와 함께 유명스타가 되는 내용이다. 스토리도 단순하고 연기도 명쾌하다. 흔해빠진 선악의 구도도 없고 오직 명예와 유명세, 그리고 돈과 섹스만 있다. 1975년에 초연을 하였고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있다.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본질은 별로 변한게 없다. 스토리라인 만큼 본능에 충실한 뮤지컬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주 좋은 뮤지컬이다.
시카고 초연때 록시를 연기하다 지금은 벨마를 하고 있는 최정원씨, 진지한 연기부터 오글오글한 연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록시 역의 아이비, 저음의 보이스가 매력적이었던 빌리 플린역의 성기윤씨, 그리고 마마의 김경선, 미스터 셀로판 에이모스의 류창우, 반전의 메리 선샤인 김서준씨, 그리고 다른 많은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를 보면서 표값이 아깝지 않은 연기와 무대를 보며 정말 즐거웠다.
특히, 다른 뮤지컬과 다르게 오케스트라를 전면에 배치하여 금관의 금빛 번쩍임이 무대의 화려함의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엄청난 무대장치 없이 단조로웠지만 그 속에서도 온몸불싸르며 열정적으로 펼치는 공연은 볼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무대를 보면서 뮤지컬을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생겼다. 뮤지컬은 단순히 즐기러 가서 즐기다 오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주 보러 가기에는 사실 부담스러운 티켓 값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 순간,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모두 소화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뇌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었었다. 뮤지컬은 그냥 눈과 귀로 즐기다 오면 되는 것이었다. 시카고는 바로 그 점에 훌륭한 뮤지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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