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구인들은 원주민을 침략할 수 있었을까? -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얼마 전, 캄보디아 따케오주 산속 오지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만난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그 곳에서 나고 자란 대학생인데 지역사회의 아이들에게 방과후 교실을 열어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영어 선생님이 꿈이라는 그 청년은 자기들의 나라도 언젠가는 우리나라 처럼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것을 위해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진심으로 행운을 빈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순간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 캄보디아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는 환경을 가지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진심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청년들이 있고, 맑은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똑똑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궁핍한 생활환경을 가질 수 밖에 없을까?'
몇번의 생각 끝에 대충 그럴듯한 결론을 얻어냈다. 정치적 불안정과 만성적인 부정부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었다. 다른 이유로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년 내내 따듯한 기후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버틸 튼튼한 건물이 필요하지 않다. 경제가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초기 자본이 마련되어야하고 그것으로 더 높은 교육을 받아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육체 노동에서 비롯되는 수입으로는 교육으로 연결 될 만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이렇게 얻은 나름대로의 대답으로는 캄보디아 사회에 대해서 가졌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이런 의문을 가진 상황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무엇인가 해답을 내줄 것 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뉴기니에서 새를 연구하던 도중 현지에 사는 '얄리'라는 친구가 질문을 해왔다. '왜 우리는 당신들 처럼 화물(서구 문명의 도구)를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까?' 총균쇠의 시작 부분에 있는 이 에피소드는 그동안 내가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것과 유사한 것이었다. 배운 사람은 역시 달랐는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바로 이 질문에서 '총균쇠'라는 명저를 탄생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이미 한번 비슷한 생각을 해본 입장에서 보자면 말해주기 대단히 어려운 어려운 난제였을 것이다. 그들의 사회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피상적으로 대답해주는 것은 납득은 커녕 오히려 오해만 부추기고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히게 할 수도 있었다. 책을 사서 들어본 순간 느껴지는 묵직함을 통해서 나는 어느 정도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 만큼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분석하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렴 풋이 알고는 있어도 쉽사리 설명할 수는 없었다. 왜 서부 사하라 이남 지역은 아프리카 북부지역이나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보다 문명이 늦게 시작되었을까? 사실 문명이라는 단어 조차 무엇인가 거부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정주형 주거생활이 시작되면서 정치, 문화적으로 인간의 삶이 큰 변혁을 일으키게 된 것이 사실이다. 식량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소유물이 더 많아 질 수 있었고 잉여 생산물을 저장하면서 권력의 분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른바 문명화된 세력들이 점차 영역을 넓히면서 다른 세상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을 재레드 다이다몬드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와 잉카제국의 아타우알파의 만남을 통해서 극적으로 설명을 시작해 나간다. 어째서 200명도 채 안되는 피사로의 스페인 군대는 잉카제국의 8만 대군을 모래성 허물듯이 허물어 버릴 수 있었는가? 역사적인 미스테리는 바로 총! 균! 쇠! 라는 세가지 해답을 통해 풀리게 된다.
13,000년 전 인류는 모두 수렵 채집활동을 하며 구석기 생활을 해왔다. 동일한 발전과정을 거치던 그들이 현재에 와서는 왜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 총, 균, 쇠가 왜 이렇게 불균형하게 나타나게 되었을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에 대해서 몇가지 해답을 제시해 준다. 문명화가 진행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 했던것은 정주형 주거생활과 정치조직이다. 이것은 바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 이집트 등지에서 발전한 농업에서 찾을 수 있다. 농업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수렵채집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러 곳을 전전해야 하는 생활을 그만두고 한곳에서 오래 사는 정주형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질문은 생긴다. 그렇다면 남북 아메리카에서도 시작된 농업이 왜 유라시아 대륙처럼 넓고 광범위하게 퍼지지 못했으며 이렇게 농업으로 인한 문명의 변화가 유라시아 대륙처럼 다르고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에 대한 답으로 총균쇠에서는 지리적인 차이를 제시한다.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대륙의 경우 대륙의 축이 종으로 길에 뻗어있다 반면 유라시아 대륙은 횡으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를 가진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 종으로 뻗어있는 대륙의 경우는 다양한 기후로 인해서 기르는 작물이 확산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열대성 기후에 적응한 식물이 온대성 기후에서 잘자라기 까지는 많은 시간의 적응과정이 필요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농업의 확산이 어려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용한 또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가축화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의 존재이다.
유라시아에는 가축화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다른 대륙보다 많았다. 물론 대형 포유류의 수는 아프리카가 훨씬 많았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가축으로 기르는 것이 불가능 하였다.1492년 당시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축화에 성공한 대형 포유류는 13종이나 있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는 한 종에 불과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단 한 종도 가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차이는 농업의 확산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균의 출현이다. 피사로의 군대가 아타우알파를 침략했을 때나 유럽 열강이 다른 신세계를 침범할 때 원주민의 입장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이 바로 이 균이다.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침략자들은 멀쩡한데 자신들만 픽픽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심지어 균에 의한 질병으로 몇몇 사회는 자취를 감추기 까지 했다.
이런 균은 대부분 다른 동물에게서 온 것이다. 동물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질병균들이 정주형 주거생활과 가축화를 통해 사람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는 심지어 열대지방 풍토병으로 알려져 있는 말라리아, 황열병 등의 질병도 속해 있다. 이런 질병에 내성을 가지지 못한 원주민들은 그야 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포유류의 존재가 가져온 차이에 대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바퀴의 발전과정이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모두 바퀴가 발명되었지만 그것의 발전 과정은 달랐다. 바퀴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없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온 바퀴는 그저 장난감의 수준에서 머물렀다.
총균쇠를 통해 얻을 수 있던 가장 큰 수확은 인간의 지능과는 무관하게 환경의 차이에 의해서 지금의 사회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지금과 같이 좋은 삶을 살게 된것도 아니고 낙후되어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 역시 그들이 잘못해서 힘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인간 사회의 모습도 이처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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