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삶의 지혜 - 라틴어수업(한동일 지음, 흐름출판)
반응형
안녕하세요. 정꿀잠입니다. 재작년부터 서양 역사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어느덧 라틴어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없는 시간에 그 어렵기로 소문난 라틴어를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한동일 선생님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청록색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잔한 청록색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죠.
라틴어 수업은 한동일 선생님께서 쓴 책입니다. 한동일 선생님은 정말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 이력 또한 책에 신뢰감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라는 이력이 그것인데요. 카톨릭의 수도인 바티칸에서 인정하는 학교에서 교회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라틴어로 모든 수업을 하는 교황청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한동일 선생님은 어쩌면 우리나라 말보다 라틴어가 더 익숙할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우리 말도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한동일 선생님이 잠시 귀국하여 서강대에서 수업하였던 내용을 정리해서 쓴 책이라고 합니다.
동양에서 한자를 공부하면 더 많은 옛 문헌을 볼 수 있고, 인류 역사가 기록해 놓은 사상과 생각을 더 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에서 바로 이런 한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라틴어라고 할 수 있죠. 고대 그리스의 희랍어, 그리고 로마의 라틴어는 서양의 고대, 중세를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 라틴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더불어서 선현들의 생각에서 출발한 다양한 사색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라틴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있어 보인다”였습니다. 그런 생각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는 모양인지, 아직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라틴어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유비쿼터스, 비전, 아우디, 에쿠스, 아쿠아, 스텔라 같은 말입니다. 기업의 표어나 대학교의 로고에도 라틴어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동일 선생님도 책에서 라틴어가 어렵다고 반복적으로 써 놓았는데요. 이런 어려운 라틴어를 계속 공부하면 끈기가 늘어나고, 그 때문에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써놓았습니다. 라틴어를 공부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라틴어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서 배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PRIMA SCHOLA ALBA EST
한동일 선생님의 라틴어 수업, 그 첫교시는 바로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Prima schola alba est)입니다. “첫 수업의 희다라”는 뜻인데 첫수업은 휴강이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다른 것보다 스콜라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그렇게 자주 쓰이던 스콜라라는 단어가 라틴어라는 걸 왜 몰랐을까요. 스콜라는 학교라는 뜻인데, 스콜라 학파라는 건 쉽게 말하자면 학교 교과서에 쓰일 정도로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학파라는 것입니다. 철학은 다양한 견해와 의견들이 있고 그것들이 치열하게 갈등하고 화해하며 발전한 학문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간에 있는 스콜라는 교과서에 들어갈만한 바로 이런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윤리를 다루는 학파를 말하는 것이었죠.
이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라틴어는 우리의 주위를 멤돌고 있었습니다. 라틴어는 로마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인도에서 이주해온 민족들이 지중해 쪽으로 넘어오면서 산스크리트어의 다양한 단어와 문법들도 같이 넘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산스크리트어의 영향은 서쪽으로만 간 것이 아니고 동쪽의 우리나라에도 영향을주게 되는데요.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일반 명사인 “엄마”만 보아도 “마” 발음이 전세계적으로 공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의 마더, 프랑스의 마망, 스페인과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의 마마만 보아도 알 수 있죠. 그리고 한동일 선생님은 이게 단순한 우연의 결과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철학자라는 것에 대한 어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피타고라스와 엮인 이야기인데요. 피타고라스 이전에는 칭송받는 삶을 살면서 남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들을 “현자”라고 불럿습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호칭을 철학자라고 정하게 됩니다. 그 뜻은 지혜를 궁구하는 사람, 혹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며, 굉장히 겸손한 자세죠.
라틴어 발음의 차이, 고전발음과 스콜라발음
로마의 말인 라틴어이지만 라틴어의 발음이 내륙과 이탈리아에서 다르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흔히 스콜라 발음, 혹은 로마 발음이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발음은 중세 로마 이후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여 중 고등학교에서 널리 읽히는 방식입니다. 혹자는 그래서 교회발음이라고도 하지만 학교발음이라는 뜻의 스콜라 라틴어가 정식명칭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고전발음 또는 복원발음이라고 해서 고전 문헌을 토대로 르네상스 시대에 복워난 발음입니다. 이 발음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인 에라무스가 저술한<올바른 아틴어 및 그리스어 발음에 관한 문답>에서 출발합니다. 두 말의 차이는 아래의 예시를 보면 더 쉽게 다가옵니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
로마발음 : 논 스콜래, 세대 비때 디쉬무스
고전발음 : 논 스콜라에 세드 위이타에/비타에 디스키무스
이렇게 서로를 다르게 발음하는 배경에는 역사적, 문화적 자존심이 깔려 있습니다. 로마인이 야만인이라고 불렀던 영국과 독일인들은 근대부터 유럽 문화의 주도권을 잡았기 떄문에, 로마 제국 및 중세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원 문명이 자신들의 근원이라 여기고 고전 발음을 고수하죠. 반면, 라틴계(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그리스-로마-중세-근대로 유럽의 문화가 이어져왔으며 자신들의 문화가 그 맥을 이어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로마 발음, 즉 스콜라 발음을 중시합니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
또 많은 단어들이 라틴어에서 나왔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자면 수도자들이 입는 옷을 뜻하는 라틴어 “하비투스”에서 습관을 뜻하는 영어 Habit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매일같이 같은 수도복을 입는 것에서 습관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죠.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겨먹는 티라미수 또한 이탈리아어에서 왔는데요. “끌어당기다, 잡아끌다”라는 뜻의 “티라레(tirare)” 동사와 “위”를 뜻하는 전치사 “수(su)”의 합성어로 “위로 끌어올리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티라미수의 이름은 이 케이크를 먹으면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을 가진다고 합니다. 술을 뜻하는 리큐르(Liquor) 또한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로마의 연회에서 바텐더들은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퍼주 었는데 뜨거운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가죽푸대에 든 뜨거운 물에 포도주잔을 중탕해서 내주었습니다. 시인들은 이를 여과한다는 의미의 동사 리쿠오(Liquo)로 사용을 하기 시작했는데 리쿠오르(Liquor)라는 단어에 알코올 음료나 술이라는 의미가 추가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새롭게 안 사실도 있었는데요. 아래의 그림은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1512)>라는 그림입니다. 혹은, 시스티나의 마돈나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그림의 하단에는 천진난만한 천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천사들은 성스러운 그림과 관객 사이에 끼어들어 긴장감을 해소해주는 장치로 사용됨과 동시에 관람자가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게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그림 이후로 천사는 바로 이 모습으로 정형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합니다. 우리가 지금 흔히 그리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유용한 라틴어 문구
Veni, vidi, vici(왔노라, 봤노라, 이겼노라)는 로마 황제정의 기초를 닦은 케사르가 폰토스(현재 터키지역)에서 전투를 이기고 원로원에 던진 유명한 말입니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e suppicit diei malitia sua.(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마테오복음 6:34)
Hoc quoque transibit!(이 또한 지나가리라)
반응형
'일상이야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 역사에 담긴 음식 문화 이야기 - 린다 시비텔로 (0) | 2019.02.07 |
---|---|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조슈아 포어 (0) | 2018.03.16 |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글쓰기가 최고다(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0) | 2017.11.27 |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도감 - 조지무쇼 (0) | 2017.08.03 |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0) | 2017.07.17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인류 역사에 담긴 음식 문화 이야기 - 린다 시비텔로
인류 역사에 담긴 음식 문화 이야기 - 린다 시비텔로
2019.02.07 -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조슈아 포어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조슈아 포어
2018.03.16 -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글쓰기가 최고다(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글쓰기가 최고다(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2017.11.27 -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도감 - 조지무쇼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도감 - 조지무쇼
2017.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