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상식에 대한 도전
권선징악은 존재하는가?
열심히 산다고 올바르게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한 권위자의 삶을 가지고 이야기를 엮어간다.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데이비드 스타조던의 삶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이 겪을만한 삶은 아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고난과 역경에 대항하는 인생의 단편을 보고 매력을 느끼고 그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해부한다. 그리고 여정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으로 남겼다. 룰루 밀러가느낀 그의 열정만큼 끝도 아름다웠을까?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자서전과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놓은 논픽션인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류를 발견하고 분류하는데 거의 모든 생애를 보냈다.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이름난 대학,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고 끝내 총장까지 하게 된 인물이다. 그의 과학적 성취는 월등하다. 생전에 발견한 물고기가 2,500종 이상이라고 한다. 물고기의 1/5 가량을 그가 발견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적, 과학적인 성취가 월등하다고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과 권위에 집착하는 만큼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웅덩이에 있는 물고기 표본을 얻으려 독을 타고, 장애인과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인생을 잔인하게 멸절시키는 우생학의 선봉에 서기까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낱낱히 파헤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했던 일 중 가장 악날한 일이 크게 보면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로 인종차별을 넘어 인간 청소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스탠퍼드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이사장을 독살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날한 위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지키면서 고결하게 갔다.
권선징악, 그런게 존재하긴 할까?
사후 룰루 밀러라는 과학기자가 그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우생학 프로그램의 생존자의 이야기는 꽤 큰 부분을 할애하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끔찍한 사실에 대해서 회고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니… 우리가 우생학이라고 말하며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에 대한 과거는 생각보다 처참했다. 과학자라는 사람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이론을 주장하고 그것을 정책까지 반영시켰다는 점에서 과거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현실은 과연 어떨까? 이런 끔직한 역사적 죄를 저지른 사람이 받고 있는 대우는 그에 걸맞게 처참할까? 이럴 때는 언제나 그렇듯 현실이 더 끔찍한 법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에 동으로 만든 흉상이 있으며 심리학부 건물은 그의 이름으로 불린다. 화려한 장식의 초상화로 그를 기리고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 뛰어난 어휘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류는 존재하는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가지고 있는 권위의 근원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분류학자로써의 명성이 있다. 어류의 계통을 가장 완벽하게 구조화시킨 과학자, 그렇다면 물고기는 존재하는가? 아니, 정확히 어류라는 분류가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 적어도 이 책의 말미에서는 어류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끝맺음을 하고 있다. 어류는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물 속에 살면 어류인가? 그렇다면 돌고래는 왜 물고기가 아닌가? 아가미로 숨은 쉬면 물고기인가? 그렇다면 폐와 유사한 기관을 가지고 숨을 쉬는 폐어는 물고기가 아닌 것인가? 세가지 동물 그림을 보자 소, 연어, 폐어. 지금까지는 연어와 폐어는 어류고 소는 포유류라고 배웠다. 과연 그럴까? 폐어의 심장구조나 후두개 등을 보았을 때 많은 분류학자는 폐어는 연어보다 소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 속에 산다고 모두 어류는 아니다. 그곳에는 비늘이 달린 물고기, 허파가 있는 물고기, 빨판 같은 주둥이를 가지고 있는 무악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런 생물을 어류라는 제한된 분류로 넣기 시작하면 유사한 동종의 동물들도 들어간다. 처음에는 개구리도 어류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새들, 그리고 물소들까지 어류로 분류되고 말 것이다. 어류를 넓게 분류한 만큼 분류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나는 어류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 하나만 읽고 어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지식이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어류라는게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게 됐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만해도 장족의 발전이 아닐까싶다. 룰루 밀러는 성공했다. 적어도 나에게 한정짓자면 그녀가 이 책을 쓴 의도는 성공적이다. 그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떻게 된 것일까? 어류가 없어지면 그의 과학적 성취가 옅어지며 새로운 정의가 들어설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점차 사라져갈 것이며, 오히려 그가 행했던 끔찍한 일이 재평가 되면서 부정적 인식이 늘어갈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스탠퍼드와 인디애나 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라고 하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은 죽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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