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고
저번 달 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삼국지를 어제 드디어 다 읽었다. 중학교 시절 부터 계속해서 삼국지를 접했지만 끝까지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삼국지는 끝까지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흔히 삼국지 하면 유비, 관우, 장비의 삼형제를 떠올리기 쉽다. 나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하였으나 삼국지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무려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야기를 꾸려 나가기 때문에 사건도 사건이지만 등장인물도 너무 많았다.
유비, 관우, 장비가 이미 죽고 그 손자들이 살아가는 시대까지 이야기가 계속 될 줄은 몰랐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시대적 배경이 길었던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는 초반에는 난세의 영웅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그들처럼 큰 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유비와 같이 큰 매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끌고 관우, 장비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헤쳐나가고자 했다.
간접경험이라도 하고 싶어서 삼국지 게임을 찾아보았다. 학창시절에 하던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이 너무하고 싶어서 찾아보았으나 이미 발매가 안된지 오래되었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책을 읽으면서 게임까지 하면 삼국지에 너무 빠져들것 같아서 근질거리는 가슴을 감추며 책을 읽어 나갔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그런 느낌은 대부분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많은 영웅들이 난세에 이름을 떨치며 일궈 놓은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솥발의 형상을 만들어내면서 삼국을 이루었던 세 유비, 조조, 손권의 세 황제들도 결국에는 통일 중국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 제후들의 싸움이었는 줄 알았던 삼국지가 어이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결말이 난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마지막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끝맺음을 맺곤한다. 원대하였던 과거가 먼지 속에 가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그나마 행운인 것은 그 깊은 역사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어도 나 같은 사람들이 삼국지라는 책을 꺼내 읽을 때 마다 그 먼지를 툭툭 털어내 숨어있는 그들의 영웅적인 과거를 밝혀낸다는 것이다.
10권이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내 거슬렸던 점은 이문열 작가의 개입이었다. 나름 공부를 많이하고 삼국지에 대한 해석에 자신감이 있었던지 자신의 견해를 너무 많이 집어 넣었다. 삼국지라는 소설이 이문열씨가 말하듯이 촉한정통론에 입각해서 씌여졌다면 촉한정통론이라는 것이 나관중이 내세우고 싶었던 이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문열 작가는 촉한정통론이 그렇게 꼴보기 싫었던지 유비와 제갈량이 미화되는 부분에는 어김없이 해설을 달아 놓아 정사에서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고 이것은 꾸며진 일이라고 써놓았다. 소설의 이야기 흐름이 유비와 제갈량에게 동화가 되도록 흐르고 있는데 그 중간에 자꾸 감흥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또한 정사를 공부하시면서 조조의 영웅됨에 홀리셨는지 조조가 조금이라도 격하되서 표현되는 대목에는 정사에서는 이렇지가 않고 조조의 인물됨이나 용맹이 뛰어나가는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해놓았다.
시대적 상황이나 작가의 의도가 소설에는 당연히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삼국지의 주요 줄거리가 이렇게 형성되고 그것이 많이 읽혀왔던 것은 지금의 우리는 알지 못하는 그 시대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평역을 하면서 그 의도를 훼손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이야기의 흐름을 끊은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문열 작가가 삼국지에 심취해서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알겠다. 그리고 정사와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꼬집으면서 독자들에게 '사실 이건 이렇지 않고 이랬어'라고 말해주고(아는 척 하고) 싶은 것또한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소설이 다 끝나고 나서 뒷부분에 첨부해도 된다. 정말 좋게 읽었지만 이 부분은 읽는 내내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
'일상이야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테의 파우스트 (0) | 2015.09.24 |
---|---|
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김정운)_21세기북스 (0) | 2015.07.08 |
금융투기의 역사 - 에드워드 첸슬러 (0) | 2015.05.20 |
나쁜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0) | 2015.05.17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 (0) | 2015.05.15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괴테의 파우스트
괴테의 파우스트
2015.09.24 -
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김정운)_21세기북스
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김정운)_21세기북스
2015.07.08 -
금융투기의 역사 - 에드워드 첸슬러
금융투기의 역사 - 에드워드 첸슬러
2015.05.20 -
나쁜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나쁜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201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