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
간만에 정말 어려운 책을 만났다.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읽은 것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늦게 후기를 쓰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조차 흐려질까봐 책을 덮자마자 황급히 포스팅을 남기고자한다.
파우스트는 누구인가? |
파우스트는 실존인물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15세기경 독일에서 태어난 파우스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이치를 통달하고 나서도 고귀한 영적세상과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문에 악마에게 24년간 영혼을 판 댓가로 신묘한 힘을 얻어 다양한 기행을 보였다고 한다. 파우스트의 곁에는 검은 개의 형상을 한 악마가 함께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 바로 개로 변한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는 것이라는 설정으로 나타난다. 아무튼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우스트는 인생의 마지막 날에 여관 주인에게 "오늘 밤은 놀라지 마시오." 라는 예언을 한 뒤 악마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는 독일에서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내려오는 민담의 주요 줄거리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음악, 소설, 시, 그림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재창작이 되었다.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그 작품들 속에 속해있는 한편, 단순한 소재를 지구상의 공통 관심사로 이끌어낸 엄청난 작품이다. 파우스트라는 개인의 모습을 지금까지도 세계의 관심을 받는 공적인 존재로 끌어올린 것은 거의 괴테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파우스트 하면 괴테, 괴테면 파우스트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작품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파우스트 = 괴테의 파우스트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평생을 방황한 괴테 |
괴테의 작품 중 가장 유며한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일평생을 바쳐 집필한 파우스트와 젊은 시절 수많은 청춘들의 심금을 울리며 베르테르 효과를 만들어낸 젊은 베르테르의 슬품이 아닌가 싶다. 두 작품은 모두 일반적인 소설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고 받는 편지를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며 파우스트는 소설이라기 보다 극작품이다. 대사와 지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은 읽기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 두 작품에서는 모두 방황이라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어느 한자리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여기저기 유랑하고 그곳에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절망한다. 때로는 파멸하기도 하며 그 파멸은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설득력있는 지속의 모습이다. 이것은 평생을 두고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행한 괴테의 생애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여정에서 죽음은 설득력과 필연성이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있다.
파우스트는 괴테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극 중 시공간을 초월한다. 그리스에서 독일로 이동, 또 고대 그리스로 시간을 초월하여 여행을 하면서 지적인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순수성에 대한 열망을 보인다. 비극 제 1부에서는 태초의 모습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에 나온다. 천사와 악마의 내기, 학자로서의 고민, 그리고 악마와 계약을 하는 파우스트, 그레첸이라는 소시민적이고 속세에 얽매여 있는 여인과 사랑을 통한 비극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2부에서는 그런 지상세계를 넘어 인간에 대한 순수성에 대한 열망의 모습이 담겨있다. 실권이 없는 황제의 이야기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헬레나에 반해버린 파우스트는 헬레나를 찾아 고대 그리스로 떠난다. 그리고 과정을 함께하는 인조인간 호문쿨루스 등 인간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마법을 통해 극도의 쾌락과 사치를 향유할 수 있게된 파우스트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옳가매는 인류애적인 욕망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고 도전해 나간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 좋든 싫든 만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 깨달은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와 계약한 주문을 외우며(그만!, 너 정말로 아름답구나) 생을 마감한다.
중요한 사실은 악마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 조차 결국에는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괴테 자신 역시 파우스트와 같이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또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향수 |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게 있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사랑이야기이다. 수많은 철학적, 과학적 수사 없이 오로지 인간의 감정 표현에 집중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읽기 수월했다. 다른 부분보다 그 부분이 잘 읽히는 것 역시 익숙해있던 구조였기 때문이다. 1부에서 그레첸과 사랑을 나누기위해 파우스트는(메피스토펠레스가 설계하긴 하였지만) 본의 아니게 그레첸로 하여금 그녀의 엄마를 독살시키게 한다. 또한 사생아를 낳게하고 그녀의 오빠 역시 파우스트에게 칼에 찔려 죽음으로써 그레첸의 가정과 정신은 철저하게 파괴된다. 결국에는 착시와 환각에 빠져 그녀를 구하러온 파우스트 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사형을 당하고 만다.
이런 비극적인 초반부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뜬금없이 고대 그리스 헬레나와 사랑에 빠진다. 파우스트가 존재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땅속의 보물을 담보로 뿌린 지폐로 재정적 위기를 넘기고 향략에 빠진 왕은 파우스트로 하여금 최고의 미를 가지고 있는 헬레나와 파리스를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 역시 고대 그리스의 영역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어 파우스트에게 열쇠를 주며 헬레나를 직접 데려오라고 한다. 파우스트는 헬레나와 파리스의 환영을 불러오는데 성공하지만 파리스가 헬레나를 납치하려는 모습에서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이 헬레나를 구하고자 뛰어든다. 환영은 사라지고 파우스트는 기절을 하며 꿈을꾸지만 파우스트의 제자가 만든 호문쿨루스의 도움을 받아 고대 그리스로 헬레나를 만나러 떠난다.
고대 그리스는 인간의 순수성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가상의 공간이다. 신들과 어울리는 인간, 영웅과 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태고적 인간이 꿈꿔온 신과의 조화를 보고 있다. 전설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나 순수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의 모티브로 쓰이고 있다. 태고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최고의 여성인 헬레나를 통해 고대 그리스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가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가치를 얻고자 한다. 마치 아틸란티스나 유토피아 처럼 인간의 순수성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시공간을 나타낸다.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나도 그 활기찬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에 함께 하고 싶었다. 고대 그리스라는 공간, 그리고 헬레나는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뇌운동 |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어려운 책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설부터 먼저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략적인 내용이라도 알고 시작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다. 대사 하나하나는 모두 시적이다. 많은 비유와 은유를 내포하고 있지만 나는 알길이 없기 때문에 답답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그동안 나는 여행에서만 쓰고 있었는데 문학작품에서도 똑같이 쓰일 수있다는 것을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느꼈다. 지금까지 수집해온 모든 인문학적 지식은 파우스트를 읽기위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 이해하지 못했다.
엊그제 고등학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술에 취해 뜬금없이 "너는 똑똑하니까..." 라는 말을 하더라. 하지만 나는 절대 똑똑하지 않다. 그냥 두뇌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몸이 근육을 기르듯 뇌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 공부에 대한 내 생각이다. 뭐든 알고 있으면 다른 지식과 빠르게 연계가 되면서 습득이 빨라진다. 기초체력과 순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농구, 축구, 배구 등 스포츠를 빠르게 잘하는 것처럼 뇌도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게 바로 이해력, 독해력 등이다. 독서와 공부를 통해서 이런 것을 꾸준히 길러 둔다면 결국에는 쓰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파우스트는 내가 얼만큼 뇌를 쓰고 있었는지 중간 테스트를 위한 좋은 책이었다. 읽는 동안 머리에 쥐가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해 못하는 것을 굳이 계속 이해하려고 했으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이해 못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넘기고 어려운 부분은 두번 세번 읽기도 했다. 머리에 잘 안들어오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나마 흥미가 있던 대목에서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기도 했다.
다 읽고 나니 후련함과 동시에 한번 더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때는 서양 근대사와 고대 그리스에 대한 이해력을 어느 정도 더 키우고 나서 읽고 싶다. 파우스트는 단순히 책 한권을 읽으면서 만족하는 것이아니라 책을 읽음으로 인해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을 작품 속의 파우스트로 만들어 버리는 작품이다. 이 점에서 괴테는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파우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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