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김정운)_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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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원하는 인문학의 모습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1년쯤 지났을 때 나는 휴대전화를 바꿨다. 그 당시 내 손에 새로 들어온 휴대폰이 아이폰4였다.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을 뿐인데 사람들이 어깨넘어로 내 손에 들려있는 전화기를 신기한 모습으로 쳐다보면서 수근거렸고, 책상 위에 휴대폰을 꺼내만 놔도 모르는 사람이 한번 만져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획기적인 신문물이 서양에서 들어오는데 뒤쳐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일어나서 KT 홈페이지를 쪼아대며 예약 주문한 보람이 있었다.
아이폰에 국내에 화려하게 상륙하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이폰이 들어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스마트 기기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산업의 형태까지 변화되었고 개인 기술 창업 또한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인문학이 대세라고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떠들어 댔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시점에서는 그때부터 세상은 인문학에 집중했다. 스티븐 잡스의 성공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 무렵, 나는 대학 시절의 반 이상을 술로 보내고 남은 것이라고는 인문학도의 자존심 뿐이었다. 그 자존심도 실상은 인문학이라는 알맹이를 숨기고 있다고 우기지만 열어보면 의미없는 거창한 문장만 쓰여있는 포춘쿠키와 같았다. 세상이 인문학을 하도 치켜세우길래 나는 이정도만 배워도 인문학이 충분히 경쟁력있는 학문인 줄 알았다. 공돌이들의 기술 세상이 지나고 이제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는 감동적인 순간을 누리리라 확신했다.
그렇지만, 취업시즌이 다가와도 대학생활을 몽땅 투자한 국문학은 학문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도저히 쓸 데가 없게 느껴졌다. 대학생활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였지만 나도 잘 모르겠는 것을 인문학이 대세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과연 알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려 먹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도가 생각하는 인문학과 세상이 바라보고 원하는 인문학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은 인문학의 본 모습이 아니라 인문학을 통해 편집된 세상이었다.
김정운 교수가 말하는 에디톨로지가 바로 세상이 원하는 인문학의 모습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고정관념을 비틀어 세간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지는 권력이다. 편집은 곧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뭔지 잘 모르니까 세상에서는 그냥 인문학이라고 부르자고 퉁치는 것이다. 사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은 것이지만 그건 인문학의 중요성을 외치는 그들에게는 지금와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것도 편집된 인문학의 모습이다.
책을 읽을 수록 김정운 교수의 타고난 재주에 놀랐다.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한다. 하지만 책이 잘 읽히는 것이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에디톨로지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고,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익숙해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톨로지와 무관한 주변 환경을 찾아보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개인, 관념, 그리고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에디톨로지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내가 뭘 읽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런 류의 책을 접하면 항상 고마운게, 안개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개념을 확실하게 잡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생각에 대한 답을 내리고 세상을 읽은 방법의 가지 수를 늘려준다.
에디톨로지를 읽을 수록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키고 적응해가야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을 꼽는 다면 아래와 같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핵심을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고 규정한다. 근대 후기의 성과 상회는 각 개인을 끊임없는 자기 착취의 나르시스적 장애로 몰아넣는다.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발적 자기 착취'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일원론적 발달과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주체는 죽을 때까지 안정된 자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후기 근대적 주체의 미완결적 성격은 자신을 태워버리는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현재 청년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피로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원론적 사고가 아닌 다양한 사고를 통해 안정된 자아를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도 앞으로 꼭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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