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봉준호 물을 탄 영화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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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580억이 넘는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넷플릭스를 위해
시한 수 읊조리고 시작하겠습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옥자에 대한 저의 감상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가급적 찾아보지 않습니다. 정보를 찾아보면 그 정보가 영화를 유연한 시각으로 올바로 보기에 부적합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이하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슈퍼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화를 보기 전에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씨의 의미있는 SNS를 보고 말았습니다.
" '옥자'가 꼬마 이름인 줄 알았더니 돼지 이름이었구나. 식용 가축에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이건 축산업에서는 불문율 같은 것인데,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가축에 인격까지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돼지든 닭이든 개든 고양이든 이름을 붙이면 반은 인간이다. 옛날에 집에서 키우던 똥개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였다. '똥개야~' 정도로 불렀다. 만약 어찌하다 '누렁이'니 '백구'니 하는 이름이라도 붙으면 차마 직접은 못 먹고 이웃집 똥개와 교환하여 먹었다."
저는 이말에 백번공감을 하는데 제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도 식용을 목적으로 키우는 가축에게는 이름을 절대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게 굳이 누군가 나서서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해서 안 하던 것이 아니고 어느 집을 가도 이름을 붙인 가축은 애정을 가지고 돌보았습니다.
팔기 위한 소나 먹기위한 개, 토끼 등에는 아예 이름을 안 붙이는게 당연한 일이었죠. 어쩌다 부를 때도 이눔의 개새끼, 토끼새끼, 소새끼라고만 부르곤 했습니다. 많은 식용 가축을 기르던 저희 시골집에도 이름이 붙었던 개가 지금까지 두마리가 있었는데 이녀석들은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천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은 깊은 산골짜기에 사는 미자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자라온 슈퍼돼지 옥자에 대한이야기입니다.
옥자를 처음보는 순간 "저건 돼지새끼인가 하마새끼인가.." 생각을 했었죠. 하마라고 하기엔 귀가 너무 크고 돼지라고 하기엔 덩치가 너무크고 하마처럼 보였으니까요. 고민을 하기도 잠시 슈퍼돼지라고 정확하게 짚어주고 그 슈퍼돼지의 존재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깊은 산속에서 슈퍼 돼지를 벗삼아 노는 미자의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저를 보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산을 잘 아는 사람이 자연과 함께 할때 느끼는 여유로운 삶을 미자와 옥자는 함께 지내고 있었죠. 이부분에서는 굉장히 동양적인 환타지를 잘 그려냈습니다.
봉준호표 미장센과 카메라워크
봉준호 감독은 적절한 미장센과 카메라의 구도를 통해 인물의 감정표현과 행동을 극대화 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감독이라고 평가합니다.
미장센은 영화 속의 인물과 배경, 그리고 다른 장치적 요소를 통해 창작자의 의도에 의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부분을 말합니다.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기호학적인 배치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죠.
미자가 살고 있는 산과 그 속의 집, 그와 대비되는 어수선한 도시를 통해 극명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도시가 깔끔한 이미지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만 한데요. 미란도 회사의 깔끔한 이미지의 바로 외면에는 어수선한 도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더 들어가보면 끔찍한 학대의 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카메라의 움직임도 액션이 많은 만큼 역동적인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강제로 실려가는 옥자를 미자가 쫓아가는 장면에서는 미자의 움직임만 봐도 조마조마할 구도와 각도를 잡아냅니다. 마냥 애처럼 보이는 안서현양이 어떻게 이런 액션을 소화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액션씬도 많습니다.
무심한듯 예리한 블랙 코미디
제가 홍준호감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 문제를 깊이 있지만 가볍게 그려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작의 경우에도 무심한 듯 사회문제를 건드리고 있죠.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재미있는 장면들을 많이 연출해냈습니다. 특히나 최우식씨가 연기하였던 김군의 캐릭터와 윤제문씨가 연기한 박문도역은 우리나라의 고용문제에 대해서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었죠. "내가 아니고 그들이 좆된거야" 라고 말하는 티비 뉴스 속 장면은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질 정도로 통쾌했습니다.
선과 악의 불분명한 경계
영화 속에서 정말 중요하게 보아야할 점은 절대 악은 있지만 절대 선은 없다는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나쁜 놈은 하얀 탈을 쓰고 활동하기 때문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미란도는 그냥 나쁜 놈인데 초기에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는 있지만 미자와 옥자의 사이에서 최대한 이윤을 노리면서 그들의 재회를 돕습니다.
미자와 옥자가 미란도 코퍼레이션을 통해 극적인 재회를 한다면 영화가 긴장감이 있지 않겠죠. 그 사이에 죠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가 끼어들면서 옥자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그로인해 갈등이 폭발합니다. 죠니 윌콕슨 박사는 동물애호가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얼굴이면서 성격을 대변하는 가장 주요한 인물입니다. 죠니 윌콕슨 박사의 파멸과 함께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가식적인 가면이 벗겨지니까요.
ALF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을 해방시킨다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단원을 착취합니다. 물론 작은 폭력과 착취이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혹은 방울토마도 조차 먹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결국 폭력은 폭력 앞에서 굴복하고 장사꾼은 이문을 통해 갈등을 해결합니다.
참신한 인물 설정... 하지만 아쉬운 짜임새
그렇지만 옥자의 전체적인 구성은 촘촘하지 않고 대충 얼기설기 엮어놓은 모습처럼 보입니다. 인물 각자의 개성은 너무나도 뚜렸하고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초반에는 옥자와 미자가 그 다음에는 희봉할아버지와 박문도가 그리고 그 다음은 ALF와 미란도 코퍼레이션틸다트윈트의 1인 2역인 미란도 자매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인물이 대결구도를 이루거나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뭔가 구멍뚫린 문창호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넷플렉스라는 플렛폼이지니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르고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일 수도 있지만 구조적인 짜임새나 스토리의 구성이 다소 치밀하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가 주목하는 인물은 변희봉씨가 연기한 희봉할아버지입니다. 시골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어딘가는 어른스러운 때가 탄 모습인 우리시대의 사회인의 모습도 볼 수 있죠. 전형적인 시골 아저씨의 이미지입니다.
자연과 함께 순수한 모습으로 잘 지내지만 그와중에 현실적인 타협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손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옥자를 보내야만 하지만 미자에게는 그 모습을 차마 보여주지 못하고 도피하고 외면하는 것을 통해 서투르지만 손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손녀를 위해서라면 금돼지도 아낌없이 퍼주는 자애로운 모습이죠.
그러면서도 소주를 병뚜껑에 따라 마시는 인간적인 검소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는 미자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것을 기뻐하고 기대하는 모습은 여지없이 우리의 소시민적 모습을 나타내줍니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또 한번 양 극단은 없으며 사람의 존재는 동전의 양면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자의 금돼지 가격이 얼마나 할까?
옥자와 미자가 도축장을 나오면서 데리고 나온 새끼 슈퍼돼지를 통해서 비극 중에서도 옅볼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의 대대적인 해소가 아닌 회피를 통해서 나오는 희망이라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끼돼지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미처 나온지 못한 부질없는 희망과 같습니다.
슈퍼 돼지들이 모여있는 도축장의 모습에서 예전 인간이 저질렀던 죄악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몰인간적인 태도로 동족을 학살하는 모습을 인간보다 더 큰 범주인 동물로 까지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도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GMO 까지 가지 않더라고 현재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도축의 현장도 영화와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하고 싶다면 극단적 ALF 대원처럼 방울토마토 한개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적당하게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죠.
미자는 시간 날때 보면 가슴이 따듯해질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면서 사회에 대한 통찰도 함께 할 수 있는 영화이기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천할 정도는 아니기에 그냥 단순히 시간날때 보면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새로운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문화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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