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나마 낭만적인 시대 다큐 - 박열
리뷰를 쓰기 전에 우선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간단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조국 또는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혹은 박열처럼 부당한 권력의 탄압에 항거하고자 이름도 남김없이 산화하신 무명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 그리고 지금까지 존경과 우러름을 받는 드러나있는 여러 순국선열께 존경을 표합니다.
박열 할아버지는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국가공인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입니다. 박열 할아버지의 삶을 철저하게 고증한 후에 내놓았다는 영화 박열, 이준익 감독이 그렇다면 그런거라고 믿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 싸다 싸!! 단돈 26억원
영화는 1923년, 그러니까 3.1운동이 일어난지 4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그때가 바로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비극인 일본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관동 대지진을 그릴 수밖에 없었죠. 영화를 보면 누구나 느낄만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오 지진이 일어나는데.. 뭐가 좀 답답하네?
네 쌈마이입니다. CG도 뭔가 엉성하고, 그동안 우리가 헐리우드에서 봐왔던 지진과는 차이가 큽니다. <샌 안드레아스> 정도는 되야 "아 이게 좀 큰 지진이구나." 할텐데 뭔가 어설픕니다. 그렇죠. 이렇게 제작비가 탄로나는 겁니다. 동시대에 개봉한 <리얼>이라는 영화는 자그마치 100억이 넘게 쏟아붓고 설리만 남겼다면 이영화는 그의 4분의 1!! 26억원을 순 제작비로 들이고 6주의 촬영기간을 거쳐 이정도 퀄리티와 관객을 뽑아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가성비의 마술사이며 절약의 아이콘입니다.
진정한 아나키스트 박열, 근데 아나키스트가 뭔데?
영화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뭐니뭐니해도 아니키스트 단체인 불령사 단체의 회원 모습입니다.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뭔가 좀 합리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독립단체는 뭔가 굉장히 열의에 찬 지식인들이 엄청난 목적과 신념을 가지고 일을 진행해 왔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도 전혀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조직에 참여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영화 속 불령사와 같이 순수한 의도와 불타는 열정으로 뭉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이 영화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정부자들인 아나키스트의 모임이 권력적으로 짜임새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뭔가 이치에 맞지 않죠.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들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구체적으로는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집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제국주의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나치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적 정치형태가 나타나고 있었죠. 이에 대항하는 이념적 토대가 바로 아나키시즘입니다. 무정부주의로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죠.
극중에서 사회주의 오뎅바를 운영하는 것과 같이 사회주의와 결합하기도 하였는데 무정부주의라는 해석으로 보면 아이러니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부가 없다면서? 근데 왜 사회주의를 추종해???
앞서 말했듯이 그 이유는 전체주의적 이념의 반대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끔 일본의 정신나간 극우단체들이 설치는 것처럼 파시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이딴 호로 잡것들의 기본적 바탕은 극우입니다. 그럼 그 반대 극좌는 뭐죠?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부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이 좌익에 분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이념은 굉장히 진보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91년에 옐친이 보드카 빨고 탱크 위에서 연설하면서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많은 주사파들이 활동하고 있던 점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소련을 만든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인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들과는 상당히 친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궁극적으로 모든 생산수단을 공평하게 소유하고 부당한 권력자나 자본가로 부터 노동자를 해방하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혁명을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혁명에 성공을 하고보니 정부라는 권위적인 조직이 없이는 노동자를 궁극적으로 해방할 수 없다는 것을 표면적으로나마 알게되고 궁극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형태로 일당독재 정부를 인정하기에 이르릅니다. 바로 그게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노동당 일당독재 정부입니다.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들에게는 공산주의의 도구의 한 형태로써 억압적인 정부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에 반하여 나온 것이 바로 아나키즘입니다.
"일당독재? 개같은 소리하지말고 공산주의 사회나 만들어!!" 바로 이게 아나키즘의 메인 정신인거죠. 그래서 부당한 권력에 의한 폭력에 항거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 그 시대 아니키스트 단체가 불령사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뭐니뭐니해도 김원봉 선생님의 의열단입니다. 삼일운동을 보고 크게 감명 받은 약산 김원봉 선생님은 "저 그지같은 일제놈들 싹다 때려 부셔버리자!"며 1919년 11월에 조직한 아나키즘을 표방하는 단체인 의열단을 만들었습니다. 늘 죽음을 벗삼아 살았지만 끝까지 조선의 자존심을 지닌 멋진 모습을 유지하며 의리로 끈끈히 뭉친 조직이었죠.
아니 니혼진들이 이런 연기를??
이 영화를 보면서 "와... 일본인들 겁나 많이 나오는 구나... 근데 자기나라의 치부를 들치는 이런 영화에 엄청나게 나왔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네이버에서 출연진을 찾아보고 까무라치게 놀랐습니다. "아니 후미코가 일본인이 아니야?! 게다가 옥자에도 나왔어?!"
네 그렇습니다. 후미코는 옥자에 나온 통역사였습니다. 옥자 초반에 윌콕스 박사와 레드가 산 꼭대기 희봉 할아버지네 집에 올라와 숨이 넘어가 거의 죽을 것 같아했던 그 장면에서 통역사로 함께 나왔습니다. 배우 최희서씨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 미국 등지에서 살아 5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합니다. 옥자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제작비를 후려친 박열에서는 뛰어난 주연으로 활약하였습니다. 그 덕에 위대한 배우를 한명 더 알게 되었네요.
뿐만 아니라 썅놈인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 덜 썅놈인 다테마스 검사도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내무대신은 아가씨에서는 김민희씨의 혼이 담긴 야설 연기를 지켜보는 변태로 나왔던 김인우씨입니다. 다테마스 검사 역시 영화배우 김준한씨입니다.
뭔가 어벙해보이는 마키노 판사가 중요한데 재일교포 3세 김수진씨입니다. 일본내각 인물들은 바로 김수진 대표님이 만든 극단 "신주쿠양산박" 소속 일본 배우들이었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일본어로 번역해 김수진 대표에게 전달을 하였고 김수진 대표와 극단의 소속 일본 배우들이 흔쾌히 응하면서 일제의 폭압과 부도덕성을 연기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일본에게 평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습니다.
박열 할아버지의 재조명
박열 할아버지는 1902년에 태어나서 197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의 일생 중 일본의 감옥에 22년이라는 세월동안 갖혀 지내셨죠. 1923년부터 광복이 온 1945년까지 계속 감옥에 계셨던 분입니다. 근데 왜 우리는 박열 할아버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는 광복이후에 단 1년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5년 광복이후 1949년에 이승만의 초청으로 입국하였다가 1950년 6.25 전쟁의 시작과 함께 납북되어 북으로 가 버리십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조국통일상을 받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으로 북한의 특설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박열은 군더더기 없이 인물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시대의 아나키스트이면서 조선의 데미안인 박열 선생님의 일생을 옅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덩치 큰 아저씨가 위협만해도 쫄아버렸을사람이 부기기수인데 박열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 거대한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대처하셨는지 정말 대단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 역시 올바른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있게 행동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박열 할아버지도 역사적으로 볼때는 입체적 시각을 가지고 보아야합니다. 박열 할아버지는 앞서말했듯이 일본 안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을 통해서 조선인을 대표하는 공공의 적이 일본 내부에 있었어야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박열 할아버지였으니까요. 다만 감옥에 너무 오래 계서서 그랬는 지 꼿꼿했던 그 정신이 광복 이후에는 다소 빛을 바랬습니다. 일본에서 친일파박춘금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극우 재일 조선인 단체인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이라는 단체의 얼굴마담으로 뽑혀 초대 단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박춘금이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색출하던 대표적인 악질 친일파였는데 관동대지진 당시 피해자였던 박열 할아버지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죠. 물론 1948년에 내부 갈등으로 단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이승만을 적극 지지하였다는 점에서 역시 박열 할아버지는 역사적인 오점을 남겼습니다. 민단은 아시다시피 지금까지도 저기 어버이 뭐뭐 하는 애들 같이 헛소리를 가끔 찍찍하는 재일 조선인 단체입니다. 그 이후에 박열 할아버지는 1949년 이승만의 초청으로 귀국하였다가 납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운동가 여러분들은 한분 한분이 다 소중하신 분들입니다. 다소 잊혀질 수 있었던 역사 속 위인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양지로 끌어내는 것도 좋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박열과 같은 영화를 더 많이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면서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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