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 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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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독서클럽이라는 활동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썻던 독서후기에 느리게 가면 더 많이 보인다는 느낌의 글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등하교 시간 중 걸어다니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그때는 어떤 나무 아래에 개미가 많이 사는지, 이쯤되면 아카시아 꽃 향기나 풍기고 조금 더 가면 가볍게 물놀이하기 좋은 장소가 있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알면서 길을 오갔습니다. 더 고학년이 되고 버스와 전철을 타고 학교를 다니면서 등하교길은 그냥 학교를 가기위해서 시간을 소모하며 지나쳐 버리는 길로 변하게 되었죠.
배우고 알아야하는 것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집중해야할 무엇이 생기게 되었고 덜 중요한 부분을 줄여나가기 시작하면서 생각할 시간 역시 줄어들었습니다. 예전 등하교 시작이 사색과 명상의 시간이었다면 조금 더 큰 시점의 등하교 시간은 그 모자란 시간까지 쪼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시간으로 변하게 되었었죠. 그만큼 한가지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줄어들었고 빠름과 깊이는 함께 하기 힘든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었습니다.
시간이 더지나 회사를 다니면서 요즘은 조금 남는 시간을 쪼개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독서를 하고 팟캐스트를 듣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관련 정보를 캐면 캘수록 느끼는 점은 세상에 배울 점이 많은 고수들은 정말 많고 관심 분야에 대해서 읽을 책과 알고 싶은 정보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식에 대한 조급함이 생겼죠. "내가 죽기 전에 그 많은 지식들을 다 습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목표지만 최대한 많이 알고 싶었고 그래서 더 빠르게 독서를 했던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록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지식의 깊이입니다.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지식을 얉게 만들고 그렇게 얉게 지나간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면서 결국에는 그렇게 책을 읽었던 시간을 버리게 된다는 것을 요즘들어 깨닫고 있습니다. 양질의 도서를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되겠다는 점과 어느 정도의 암기는 정보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도중, 우연치 않게 도서관에 들려서 보게 된 책이 바로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입니다. 도서관에 가면 가장 먼저 보는 부분이 신간인데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한 신간이 나오면 빌려보는 식입니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론을 장황하게 써봤습니다.
독서의 핵심은 결국 깊이
이 책은 EBS 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정영미 작가가 쓴 책입니다. 정영미 작가가 EBS 류재호 PD, 미디어소풍 김동현 PD와 함께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독서 교육방법인 슬로리딩을 우리나라에 도입해서 그 성과를 측정해 보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용인의 성서초등학교 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교육이 진행되었는데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게 된 계기부터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중고등학교를 처음 접촉했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나가야하는 학교의 특성상 오랫동안 한 권을 책으로 진행하는 슬로리딩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공감되고 이해는 되나 성과주의의 교육이 깊게 뿌리 내린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것은 독서를 통한 확장입니다. 그중에서 저는 이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파생독서"를 꼽고 싶습니다. 아이가 독서를 하게 되는 계기는 정말 여러가지 입니다. 엄마의 강요, 학교의 추천 등 타의로 인한 독서는 결국 독서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죠.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많은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독상 역시 독서에 대한 양적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순전히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어나야하는데 그게 저에게 있어서는 "파생독서"였습니다.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자연히 그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러다보니 그 먹거리에 대한 역사가 궁금해졌고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학창시절에는 깊게 공부해보지 않았던 서양사가 궁금해졌고 그렇게 서양예술와 서양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꾸준히 정보를 수집해가고 있죠.
마치 무슨 과제를 수행하듯이 책을 읽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작은 것에도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면서 하나의 책을 깊고 넓게 파고 들어가는 방법에서 정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장을 펴면서 한개의 책으로 얼마나 많은 활동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정말 많은 활동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제 창의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언젠가 제 자식인 정꿀잠 2세에게도 적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실시한 슬로리딩
슬로리딩은 용산의 성서초등학교에서 실시하였는데 작가는 이 시험교육을 통해서 독서능력이 33%가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량적인 지표에서 뿐만아니라 정성적인 부분에 대한 성과도 나오는데, 아이의 창의력과 표현력이 늘어나고 학부모와 교사들도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물론, 자기가 기획한 시험교육이니 성과를 강조하는 것일테지만 저는 이 교육방법이 상당히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으로 슬로리딩을 진행하였습니다. 역사적이면서 다양한 국어표현이 들어있어 슬로리딩의 교재로 딱인 작품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책을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만 되도 속독을 하면서 소리없이 책을 읽습니다. 슬로리딩에서는 이 부분이 책을 깊게 읽지 못하는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옛날 우리 선조들의 공부방법에서 답을 찾습니다. 바로 서당교육입니다. 서당에서는 훈장님이 불러주는 말을 학생들이 따라 말하는 음독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바로 이 음독에서 학생들의 독서 습관을 고쳐나가기 시작하죠. 처음에는 선생님이 말하고 따라하는 것에서 소규모 독서모임을 통해 서로 돌아가며 한 단락씩 읽어나갑니다. 음독은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독서방법으로 책을 좀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나서 책 속에 있는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역사적 배경을 조사하고 주인공의 심경을 이해하는 등 다양한 학습을 실시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하고 있는 국어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슬로리딩은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서 한번 더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자면 일제시대 창씨개명과 관련해서 '창씨개명이 좋은 건가 나쁜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주인공은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오빠의 태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 주인공은 왜 이런 태도를 가지며 일가족인 불이익을 받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처럼 구체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토론 수업으로 진행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추가로 공부하고 논리의 토대를 만들어 갑니다.
싱하라는 식물을 직접 도감에서 찾아보고 주인공이 살던 동네를 지도로 그려보기도하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때에는 피난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직접 UCC동영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고 작중에 나오는 노래를 직접 들어보기도하고 장소를 견학하며 끊임없이 작품과 교감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다른 아이와 의견을 끊임없이 교류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훈련도 병행하게 됩니다.
어려서 부터 시작하는 독서교육
독서는 학습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책과 친하고 활자와 익숙해져야 공부도 쉬워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곱씹어 깊게 생각하고 확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령 아기돼지 삼형제를 읽었다면 책을 다 읽은 아이에게 "어느 부분이 재미있었어?"라고 묻는 것보다 부모가 함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늑대가 쳐들어 왔을 때 아기돼지들의 심정이 어땠을까?"라던지 "우리집에 늑대가 쳐들어 오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조금 더 생각을 심화할 수 있는 질문을 해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집을 만들어보는 등 체험을 하는 것도 좋겠죠.
양에 집착하는 독서는 많은 부작용을 부릅니다. 지식을 얉게 하기도 하지만 지적 혀영심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죠. 가장 큰 문제는 독서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책읽는 습관, 반복, 그리고 그것을 통한 창작활동 이 모든 것이 함께 할 때 진정한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 읽어라"가 아닌 "책 읽자", 반복을 통한 효율적인 공부가 아이에게는 더 흥미롭지 않을까요. 저부터 올해 책 50권 읽기와 같은 양적 목표가 아닌 한 권을 읽어도 깊게 읽자는 질적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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