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봉준호 영화, 기생충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기생충이 남았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싶은 영화이지만, 황금종려상이 개봉 전부터 이 영화를 매진 행렬로 이끌었습니다. 저도 늦게 예매하는 바람에 로얄석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개봉하는 날 영화를 보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뭐 영화 하나 보는 게 영광 까지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영화사에 깊이 남을 영화를 개봉일날 극장에서 봤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입니다.
황금 종려상이 뭐지?
황금종려상은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의 최고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상자가 나오기는 처음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2004년에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를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만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탄 것은 이번이 최초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라는 것이지 아시아에서 최초는 아닙니다. 2018년에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어느 가족이라는 작품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그전에도 일본, 중국, 인도 이란 등 많은 아시아 나라의 감독들이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로 심사위원 만장일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총 72회 수상작 중 심사위원 만장일치는 22번입니다. 좀 많긴 하죠.
황금종려상은 그 상의 모양이 종려나무 가지를 형상하였기 붙여진 이름입니다. 외국에서는 주로 상의 모양을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는 사자상을 주기 때문에 황금사자상이라고 하고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곰 트로피를 주기 때문에 황금 곰상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카데미 시상식의 상패 역시 오스카 삼촌을 닮았다고 해서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죠.
그럼 종려나무는 어떻게 생긴 나무일까요? 다들 생소해하지만 다른 말로 불리는 말을 들으면 아마 아하! 하실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대추야자나무"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도 자라기도 하는 나무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것입니다.
황금종려상은 18K 금으로 만드는데요. 금은 공정 채굴 인증을 받은 콜롬비아 나리뇨 광산에서 채굴한 것만 사용한다고 하며 상패의 뒷면에 인증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황금종려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기로 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볼까합니다.
디테일의 거장, 봉준호
저에게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처음봤을 때, 그 감동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죠. 그 이후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저에게 봉준호 최고의 명작은 살인의 추억입니다. 단 한 장면도 버릴 게 없습니다. 그 유명한 2분짜리 롱테이크 장면부터 장면 하나하나에 숨겨놓은 미장센은 정말 역대급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 큼지막한 작품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다루기 크고 어려운 주제를 설득력 있게 밀고 나가는 능력이 남다른 감독이었습니다. 오늘 개봉한 기생충 역시 다른 감독들도 생각했을 만한 스토리입니다. 허정 감독의 숨바꼭질도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봉준호는 이런 상상력은 정말 극적으로 풀어나갑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가기도 하고 그냥 일상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볍게 슬슬 읽히는 소설처럼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장면과 주제는 묵직하기만 합니다. 뭐라고 할 말이 많긴 하지만 동어반복이므로 줄이고 기생충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 글에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기생충
기생충은 정말 독특한 영화입니다.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헌신적인 가정을 꾸려가는 가장이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덕 위 2층 집에서 사는 부자나 쿠린내가 나는 반지하에 사는 빈곤층이나 하나 같이 긍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수평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수직적인 이미지를 보는 순간 차이가 나타납니다. 가난한 사람은 낮은 곳에 머물고 부자는 높은 곳에 머무는 것과 같은 식이죠. 이야기는 이 높은 곳에서 시작되어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이런 편안한 흐름 속에서도 불편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특기인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갈등이 없으면 더 이상의 플롯은 진행되지 않겠죠. 이 영화에도 갈등이 생기고 폭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건 중심이 아닌 감정 중심의 폭발입니다. 심리적 거리에 집중하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타인이 침범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심리적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사랑과 냄새로 풀어나갑니다.
예를 들자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어우러지는 사무적인 공간은 사적인 감정이 섞여들어가면 안 됩니다. 극 중 박사장(이선균)은 이것을 선을 넘는다고 표현을 합니다. 사랑은 개인적인 감정이기에 허락하지 않은 타인과 나눌 수 없는 것이고, 냄새도 이와 비슷합니다. 모든 사람은 특유의 체취를 품고 있는데요. 그것이 그사람 자체에서 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주변 환경에서 묻어나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이런 냄새를 맡아서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야 하죠. 체취는 지극히 사적인 소유물이기에 가까운 거리에서만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극 중에서 가난한 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고용주의 사적인 영역에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직적 관계에서는 수평적으로 섞일 수 없는 개인적인 그 무엇인가를 건드리는 순간, 갈등이 생기고 선을 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죠. 그 선에 가까이 가기 위한 발자국은 그 전에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만, 선을 넘는 순간 폭발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선을 넘는 사람은 자기가 선을 넘는 것인지 모릅니다. 정말 위험한 일이죠.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계획대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계획이라는 말처럼 결국은 계획이 없는 계획을 세운 채 영화는 끝이납니다. 그 밖에도 이 영화는 정말 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품고 있습니다. 극장을 나오는 내내 정신이 멍할 정도로 장면을 곱씹어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만 더 많이 말을 하게 된다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습니다.
상을 타서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극장을 나오고 나서 더 큰 여운을 남깁니다. 아무튼 초여름에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큰 기대를 품고 보셔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입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피곤합니다. 보신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겁니다. 이쯤 되면 이전에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어벤저스의 크리스 에반스가 봉준호를 덕질하는 것이 이해될 정도입니다.
저도 이말에 백 프로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계속 주목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보물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송강호와 이선균의 케미는 말할 것도 없고 일단 목소리로 조지고 들어갑니다. 조여정 님의 순진무구한 부잣집 사모님 연기는 이전의 조여정인가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고 장혜진 님이나 이정은 님도 영화를 몰입감 있게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밖에 최우식, 박소담, 정 지소 처럼 젊은 배우 그리고 정현준과 같은 아역까지도 잘 어우러졌다고 봅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 이름도 정말 와 닿습니다. 기생충, 언뜻 보면 장르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작명 센스 개판인 거 같은데 묘하게 영화랑 잘 들어맞습니다. 작명 센스 개굳입니다.
'일상이야기 > 영화, 전시회,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추천] 미드나이트 스카이(Midnight sky) (5) | 2021.02.04 |
---|---|
고작 팩스 다섯장에 70조를 태워?, 블랙머니(Black money) (0) | 2019.11.28 |
영화 돈, 그게 돈이 되겠어? (0) | 2019.03.21 |
대고려(928.2018) 그 찬란한 도전 (0) | 2019.01.21 |
억지스러우면 어때, 울기만 했음 됐지 - 신과 함께 (0) | 2018.01.13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넷플릭스 추천] 미드나이트 스카이(Midnight sky)
[넷플릭스 추천] 미드나이트 스카이(Midnight sky)
2021.02.04 -
고작 팩스 다섯장에 70조를 태워?, 블랙머니(Black money)
고작 팩스 다섯장에 70조를 태워?, 블랙머니(Black money)
2019.11.28 -
영화 돈, 그게 돈이 되겠어?
영화 돈, 그게 돈이 되겠어?
2019.03.21 -
대고려(928.2018) 그 찬란한 도전
대고려(928.2018) 그 찬란한 도전
201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