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928.2018) 그 찬란한 도전
우리나라 역사중에 가장 찬란한 시절이 있다면 어느 시절이었을까요?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 위대한 문화를 간직한 백제가 함께하던 삼국시대일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통일 후 신라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조선에서 찬란한 우리의 역사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고려시대가 가장 낭만적이고 찬란하였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찬란하고 개방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 그 고려에 대한 찬란한 흔적이 남아있는 특별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고 하기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저는 역사에 크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괜히 고려라고 하니 무엇인가 화려할 것이라는 생각과 근대와 조선이라는 700년의 간극이 있는 미지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제 발길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로 옮겼습니다.
1100년만의 개국 기념 특별전
왜 2019년, 지금에야 고려 특별전을 할까요? 고려의 건국은 918년입니다. 1000년 기념을 하지 못했던 것은 1918년이 가슴아픈 일제강점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제대로된 고려 건국 기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 뒤 2018년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100년만에 특별한 기념 특별 전시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해를 지나 2019년에 관람을 하러갔지만 1100년이 넘는 그 세월 동안 남아있는 고려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하는 고려 특별전에는 5개국(한국,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46개기관의 450여점이 출품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서양과 동양을 망라해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고려의 흔적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을 침략으로 인해서 외국으로 나간 사례도 있지만 어려웠던 시절, 암암리에 거래되어 넘어간 것들도 많습니다. 그 오랜시간을 거쳐 일본의 오사카, 미국의 뉴욕에서 보스턴, 영국, 이탈리아 등 수많은 곳에서 이 곳으로 잠시 고향나들이를 온 유물들을 보면서 뭔가 아쉬운 느낌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고려시대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려청자에 대해서 떠올릴 것입니다. 저도 청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를 끊어 들어갔습니다. 이번 관람의 주목적은 고려청자를 많이, 그리고 자세히 보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450여점이나 되는 모든 작품이 전부 인상적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정말 인상에 남는 몇가지 유물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희랑대사 좌상
가장 먼저 저의 눈길을 사로 잡은 곳은 고려 건국의 아버지 희랑대사의 좌상이었습니다. 희랑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지주로 후삼국 시대에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왔으며, 이후에는 왕의 스승이 된 승려입니다. 고려의 정신적인 기반이 이 되었던 희랑대사는 고려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물 조각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죠. 고려의 중심이 되었던 왕건입니다.
<왕건의 스승 희랑대사와 왕건의 빈자리>
원래는 합천의 해인사에 있어야 하실 희랑대사가 어렵게 상경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연꽃 받침의 빈자리가 하나 보입니다. 이번 전시에 같이 전시하고자 하였던 태조 왕건의 인물상의 빈자리입니다. 각기 만들어진 이후에 한번도 같은 자리에 없었던 조각상이라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1100년만의 만남을 주선하고자 하였지만 북한의 응답이 없어 빈자리로 두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두 인물상이 한자리에 만나는 날이 와서 언론에 떠들썩하게 기사가 한 번 나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고려 수도 주변에서 발견된 부장품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작품은 그냥 흔한 유리잔이었습니다. 단순한 유리잔이었지만 고려시대 유리가 얼마나 귀했을까요? 아래 보이는 유리잔은 고려시대 수도였던 개경 주변에서 부장품으로 발견된 유리 잔입니다. 크기가 소주잔보다 약간 작은게 정말 앙증맞습니다. 밑에서 나오는 불빛은 오래된 영롱한 세월을 비추어 내는 듯합니다. 고려의 권력자들은 죽어서도 개성근처에 묻히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도 현생처럼 부귀와 권력을 누리면 살기를 바랬던 것이겠지요.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
고려 개경의 왕실 미술 방에 들어가면 도자기가 아닌 은제 주전자와 그 받침이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이 주자와 그 받침은 저 멀리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서 이곳까지 자리해주었습니다. 주자하나를 만드는데도 엄청나게 많고 세밀한 장식이 들어갑니다. 주자 밑부분의 기스 같은 부분도 전부 무엇인가가 음양각 되어있는 흔적들입니다. 세밀하기가 눈으로 읽기 머리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흔히 도자기만 알고 있던 저에게 은제 금도금 주자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는 고려가 도자기만 잘 만들던 나라가 아니고 금속제조술도 뛰어났었다는 증거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자 칠보무늬 향로(국보 제95호)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 나왔습니다. 바로 청자 칠보무늬 창로입니다. 향로는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불을 피우는 화사, 그리고 뚜껑과 받침, 이 청자에서 제가 가장 주목해서 보았던 것은 바로 받침을 받치고 있는 세마리의 토끼였습니다. 마치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믿었다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세마리의 눈을 검을 색으로 점을 찍었다는 것입니다. 디테일 면에서도 우수하고 아주 귀여운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쪽 화사에는 연꽃모양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잎이 다소곳하게 펼쳐져 있는 곳의 곡선도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줄기까지 양각으로 잘 표현이 되어있으며 그 깊이에 따라 청색에서 흰색으로 음영까지 잘 나타난 점이 고려 장인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줍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뚜껑 부분은 도자기를 구멍낸 투각 기법을 이용하려 화려하면서도 원형을 네개씩 겹쳐놓은 단순한 무늬를 만들면서 복잡한 가운데 안정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운데 찍힌 점을 보면 꽃잎같이도 생긴 이 무늬는 복을 주는 7가지 무늬 인 칠보무늬 중 하나라고 해서 청자 투각 칠보뚜껑 향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청자 참외모양 병(국보 94호)
대표적 고려청자의 모습인 청자 참외모양 병입니다. 화려하다고만 생각했던 고려청자에게 다소곳한 여인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병ㅇ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함보다는 다소 절제되어있는 가운데서도 기품있는 자태를 뽑내는 이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꽤 많이 만들어진, 이를테면 핫아이템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눈이 비슷한지 비슷한 디자인을 여러군데에서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모양의 병 비슷한게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 조금 더 남아있습니다. 이 병은 고려청자의 은은한 빛을 보여주며 단순해 보이지만 구현하기 힘든 비례비를 보여주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은제 금도금 잔과 잔받침
위에 보시는 잔은 은으로 가공하여 만든 잔입니다. 잔은 잔, 받침은 탁이라고 하는데 두개가 다 있으니 탁잔입니다. 그리고 꽃모양 처럼 만들었다고 해서 은제 화형탁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여기에 금 도금도 했으니 은제금도금화형탁잔이 되는 것이죠. 딱 봐도 술따라 먹었을 것 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은잔이라면 꽤 고급에 속하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사치품이었을까요? 저도 이 은잔에 술을 한번 따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억에 남는 유물이었습니다.
"그밖의" 라고하기엔 조금 미안하지만 그밖의 흥미로운 유물들
이번 고려 특전 전시에는 그동안 보기 다양한 목판, 금속 활자 인쇄물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초조대장경을 비롯하여 합천의 해인사 대장경판에 이르기까지 인쇄본과 활자, 그리고 목판 원본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그 활자 뿐만 아니라 내용 중에서도 공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재테크의 시작은 역시 쪼개기 입니다. 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불변의 진리였던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이쯤 제 지난 포스팅도 한번 보고 지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2016/02/03 - [Financial Freedom/Save the money] - 재테크의 시작이라는 통장 쪼개기
아 이거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입니다. 그냥 딱봐도 먹에 쩌든게 무지하게 오래되어 보입니다. 그 와중에 글씨는 얼마나 앙증망에 오밀조미한지 말랑말랑해 보입니다. 저도 찍어보고 싶지만 목판의 세월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가장 귀여운 것이라면 바로 부처와 보살을 모신 작은 집이었는데요. 저 집과 삼존불상의 크기가 휴지곽보다도 작습니다. 휴대용 불당인 것이지요. 귀엽고 앙증맞기 그지없습니다. 평소에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작품이지만 특별히 이번 전시전을 위해서 세명의 부처님이 국립 중앙박물관에 나들이 나왔습니다.
보살중에 최고봉을 뽑라면 역시 천수관음보살입니다. 저 현란한 손을 보십시오. 간지의 끝판왕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는 그 관세음보살이 바로 이 천수관음보살보살입니다. 저 많은 손으로 우리 중생들을 그냥 막 어루만져주고 계신다고 합니다. 인자한 울굴위로 보이는 덜 인자한 수많은 얼굴들 좀 보십쇼. 중생들을 남김없이 다 어루만지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옅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진위가 밝혀진 금속활자 "산덮을 복'자 입니다. 쿠텐베르크가 분자상태로도 존재하지 않을 시점에 우리나라에서는 금속으로 인쇄를 시작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글자입니다. 이르면 기록상으로 1234년, 늦어도 밝혀진 구체적인 증거인 직지심체요절이 만들어진 1377년 사이에 고려에서는 분명히 당대 최고 선진기술인 금속활자가 만들어지고 금속활자본이 찍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보고계신 이 활자 하나가 그 강력한 증거를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입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서 개성을 발굴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는 이런게 그냥 막 쏟아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2016년 발굴이 중단된 이후에만 북한에서 4개의 활자를 더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으니까요.
박물관은 언제가도 느끼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느낌의 휘발성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로 글을 남기는 것도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도 집에와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박물관을 갈때는 그 많은 작품을 전부 다 보겠다는 생각보다 몇가지 인상에 남는 작품이라도 나중에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면에서 이번 특별전은 저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위의 작품은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늦기 전에 많이 방문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 전시는 2019년 3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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