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밀란쿤데라
아무생각 없이 책꽂이에 있던 갈색 표지의 책을 꺼내 들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책이었다.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 문학 책이었는데 주말동안 꽤 흥미롭게 읽었다.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는 문학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작가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밀란 쿤데라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따라올 정도로 그의 대표작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고,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그의 장편 처녀작은 이번에 읽은 농담이다. 농담을 읽고 보니 처음이 이정도 인데 대표작은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지, 참을 수 없는 관심이 생겼다.
농담은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등장인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전체적인 플롯을 구성한다. 그래서 어느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재미가 없을 수도 있고 어떤이야기는 재미가 있을 수 있다. 목차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등장인물로 되어있다.
제1부 루드빅
제2부 헬레나
제3부 루드빅
제4부 야로슬라프
제5부 루드빅
제6부 코스트카
제7부 루드빅, 헬레나, 야로슬라프
이야기의 2/3 정도를 차지하는 루드빅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다. 소설의 시작은 루드빅이 1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부분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적으로 볼 때, 이야기의 시작은 3부 루드빅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1948년 체코에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사회위 모든 곳이 공산당의 영향력 아래 운영되기 시작한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라 루드빅도 공산당에 소속되어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산당에 속해 있는 동안에는 공부는 물론 이후에도 지식인의 삶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치기어린 행동으로 인해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노동 교화나 다름없는 군대로 끌려간다. 그것은 작은 농담하나에서 시작되었고, 만약 나였어도 쓸만한 일이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분위기는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이 처한 상황이었다면 나도 그런 농담을 했을 수도 있다. 장난이라는 액자에 두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일이다. 루드빅이 짝사랑했던 마르케타가 자신이 없는 수련회를 가서 너무 즐겁고 의미있게 지낸다는 것에 대한 질투어린 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상과 정치의 틈에 놓여 농담의 무게를 잃어버리는 순간,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버리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기득권과 미래를 놓쳐버리게 되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소설 속의 상황이 이해는 되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트로츠키는 무엇이길래 1940년대의 체코에서는 이토록 금기시되었을까? 트로츠키주의는 자본주의라도 되는 것일까? 사실을 알고보면 그러지는 않다. 트로츠키 주의 역시 공산주의의 한 분파다. 하지만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마르크스-레닌 주의라는 주류 집권세력에서 볼 때, 부패한 관료집단이 사상에 경도된 채, 기형적인 공산주의 통치를 할 경우 발전정체 현상이 일어나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넘지 못하고 붕괴한다는 가지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통해 부패한 정치세력이 아닌 혁명적 사고를 지닌 대중이 직접 통치에 관여하는 발전된 사회주의를 표방하였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레닌 주의(스탈린 주의)라는 소비에트 연맹과 그 주변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혁명국가의 주류 통치세력은 강력한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통해 자력갱생의 기초를 만들고 이를 각 국가들과 연맹하여 강한 사회주의 연맹체를 조직해야 한다고 하는 차이가 있다. 통치체제 역시, 트로츠키 주의와 다르게 혁명적 사명을 가진 강력한 당이 주도하는 관료제를 통해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어 결국에는 트로츠키 세력을 국가를 전복하려는 위험한 세력으로 규정하고 자본주의보다 더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이런 배경을 알고 소설을 읽으면 좀 더 이 소설에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 결국, 국가와 당에 의해서 버림받은 한 청년이 자신을 버리는데 동조한 사람에게 복수하려다 허무하게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루드빅의 사소한 농담에서 시작한 사건은 대학의 학생연맹에서 정식으로 논의되기 시작하고 학생연맹의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향력있는 간부인 <제마넥>에게 어느정도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한다. 하지만 결국 루드빅은 당에서 축출되어 강제수용이나 다름없는 군대에 끌려가 노동 교화형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루치에>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이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보는데, 수용소나 다름없는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풍족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돈은 있는데 자유가 없어서 쓸수 없는 현실, 자신의 신체가 다른 누군가의 변덕에 의해 구속될 수도 있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는 속박된 현실이 정말 답답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 중 대부분은 군대에 가기 때문에 이 부분에 조금 동감할 수도 있다.
루치에와 사랑은 정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다. 루치에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간절히 바라기도 하고, 탈영을 감행하기 까지한다. 하지만 성숙하지 않은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구속된 현실과 성욕때문인지 루치에의 육체를 갈망하게 되고 그로인해 둘다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다. 그 원인은 뒷부분에서 해결된다.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가 처음 쓴 장편소설임에도 플롯의 완성도가 높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등장인물은 바뀌지만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당에서 축출되고 온갖 고생을 한 루드빅은 결국 다시 대학에 돌아가 연구자의 삶을 찾는데 성공한다. 자신이 축출된지 15년 뒤, 자신에게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든 제마넥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자신의 고향으로 제마넥의 부인을 불러내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데까지 성공하지만, 제마넥은 이미 부인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이 가르치는 매력있는 여대생인 브로조바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제마넥은 부인이 이혼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마침, 루드빅이 적절한 타이밍에 아내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루드빅은 제마넥에게 복수도 하지 못하고 허탈한 모습으로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옛 친구인 야로슬로브와 함께 잊혀져가는 전통공연을 하다가 옛 고향 친구인 야로슬로브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루드빅의 이야기는 끝이난다.
루드빅의 이야기도 있지만, 잊혀진 문화를 간직하려는 야로슬로브와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들, 블라디미르와 갈등이 있다. 아들이 전통행사인 왕들의 기마행렬에서 왕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야로슬로브에게는 최고의 영예였다. 하지만 전통을 싫어하는 아들과 그 아들에게 동조하는 아내 때문에 그렇게 이번의 왕의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였지만, 아들의 어디로 갔는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자신의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실망감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루드빅을 만나 음악을 하다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기독교를 융합하고자하는 코스트카, 그리고 그를 통해 옛날의 악몽에서 벗어난 루치에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코스트카를 통해서 루치에가 가지고 있던 집단 성폭행에 대한 과거, 그리고 루치에의 과거를 모른체 루치에의 몸에만 집착했던 루드빅이 만든 기억을 치유 받는다. 루치에는 코스트카를 사랑하게 되면서 코스트카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그냥 하나님을 판 파렴치한이 아닌지 생각하며 고민하고 갈등한다. 결국 루치에를 떠나지만 루치에가 코스트카에게 다시 찾아온다. 루치에는 소설 초반에 루드빅과 만나지만 이미 알고 있던 루치에가 아니였고 그냥 지나치는 인연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제마넥에게 버림받은 헬레나의 이야기도 나온다. 헬레나는 결국, 루드빅이 제마넥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계획에 결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루드빅에게 빠져버리는데 그 과정도 꽤나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여러 등장인물이 나와 씨실과 날실처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 속에서 애정, 정치, 사상, 그리고 복수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얽히면서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완성된다.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 읽는 것이었다. 농담을 읽고난 후, 밀란 쿤데라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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